제일모직 공모주 5000억
기업공개(IPO) 시장이 지나치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편중돼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모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있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내국인들의 투자기회를 지나치게 빼앗기고 있다는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최근 증시에서 IPO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어 국부 유출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상당하다.
◇외국인 삼성SDS-제일모직 공모차익 5000억원 넘을 듯〓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삼성SDS 공모주 투자로 3000억원에 가까운 투자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오는 18일 상장 예정인 제일모직 공모주 투자에서도 2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14일 상장한 삼성SDS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공제회가 수요예측에 대거 참여하면서 기관 경쟁률이 651.5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참여도가 높았다. 기관 배정물량은 전체 공모물량의 60%인 365만9762주, 6900억원 규모였다.
투자은행(IB)업계는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해외 기관투자자에 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현재 삼성SDS 주식 397만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장 후 매입한 수량 230만주를 빼면 공모 청액 때 166만7984주가 배정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모가(19만원) 대비 현 주가(34만9500원)를 감안하면 외국인들의 평가차익은 2660억원에 달한다. 최고가 기준(11월25일 종가 42만8000원)으로는 3969억원이다.
외국인들은 제일모직 IPO에서도 상당한 수익을 거둘 전망이다. 제일모직이 지난 3~4일 이틀간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약 425조원의 신청금액이 몰렸고 경쟁률은 465 대 1로 집계됐다.
최종 공모가는 희망가밴드(4만5000~5만3000원)의 최상단인 5만3000원으로 확정됐다. 공모총액 1조5237억원 중 우리사주, 일반투자자, 하이일드펀드 배정분을 제외한 7619억원 가량이 기관투자가에 배분됐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배정받은 물량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국내외 형평성을 고려해 전체의 절반 정도인 3800억원 가량이 배정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일모직의 수요예측에는 아부다비투자청, 싱가포르투자청, 소로스펀드를 비롯해 블랙록, 피델리티, 웰링턴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의 수익은 상장 후 공모가에 따라 결정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제일모직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장 후 삼성SDS 이상으로 주가 상승률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KTB투자증권이 제시한 목표주가는 7만원, 키움증권이 제시한 목표가는 9만1000원이다. 제일모직의 주가가 9만원까지 올라도 외국인은 70%의 수익을 거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2652억원의 차액이 외국인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예정된 '흥행'에도 낮은 공모가 왜?〓외국인들은 삼성SDS와 제일모직 등 2개 회사 IPO에서만 5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두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기본적으로 두 회사의 공모가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SDS는 공모가를 회사가 제시한 희망 공모가밴드 최상단 위로 올렸어도 공모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공모가를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해 흥행몰이에는 성공했으나 회사 입장에선 아쉬운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입장에선 앞서 IPO에 나선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등 계열사들이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면서 비판을 받은 전례가 있어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생명은 2010년 IPO 당시 높은 공모가(11만원)에도 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데뷔했다. 하지만 상장 후 주가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4년간 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삼성생명은 올 10월에 들어서야 공모가(종가기준)를 회복했다.
2007년 6월에 상장한 삼성카드는 공모가가 4만8000원이었는데 기대에 비해서는 수익률이 썩 좋지 않았다. 삼성카드는 2011년 하반기 이후 올해 7월까지 3년간 4만5000원을 밑도는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이나 삼성카드와 달리 삼성SDS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와 연관됐다는 점에서 부담도 컸을 것"이라며 "공모가를 무리하게 결정해 발생할 논란보다 가격을 낮춰 안정적으로 가자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액 투자자 보호하려는 취지가 외국인 이익으로〓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삼성SDS는 동종업체인 포스코 ICT와 SK C&C를 비교대상으로 공모가를 산정했다. 이 두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과 현금흐름(EV/EBITDA) 상대가치를 산출해 주당 평가액 21만7547원이 나왔다. 여기에 공모가를 결정할 때 통산 반영하는 할인율을 적용해 희망 공모가밴드 15∼19만원을 제시했다. 최종 공모가 19만원은 21만7547원 대비 13% 할인된 가격이다.
공모가에 할인율을 적용하는 이유는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다. 한동안 기업들이 IPO를 통해 자금을 많이 끌어모으려 공모가를 무리하게 높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 결과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졌고 공모시장은 오랫동안 부진에 빠졌다.